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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

허보리

무장가장(武裝家長)

 서준호

 

여자가 남장을 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이 넥타이를 매는 것이다.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는 것 자체가 남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며 수많은 남성 가장들이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아침마다 직장으로 나선다. 허보리 작가는 그런 남성 가장들이 마치 전투를 하러 집을 나서는 것 같다고 한다. 삶이 치열한 전쟁 같은 점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양복을 입든 안 입든 마찬가지지만 작가는 남성의 아이콘인 넥타이와 양복을 소재로 만든 무기를 통해 삶의 치열함을 드러낸다.

삶의 고달픔, 치열함에 대한 고민은 애초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나 등장할 법한 중세 방패와 칼을 입지 않는 양복과 넥타이 제작으로 드러났다. 어린 남자아이들이 어느 나이가 되면 좋아하게(환장하게) 되는 칼과 같은 중세 판타지물의 전투 아이템을 통해 경쟁으로 점철되는 현대인들의 상황을 드러내는 작업에 이어 작가는 판타지적인 면을 제거하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실제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실제 사이즈의 반으로 축소한 탱크와 실제 사이즈인 M4와 M2 자동소총 그리고 M2에 쓰이는 탄과 탄통, 여러 가지 고폭탄과 수류탄을 넥타이와 양복천으로 정교하게 제작해 누구든 작품을 들고 군인 흉내를 내고 싶도록 만든다.

이런 무기를 작가는 실제로 경험한 적이 없다. 대신 용산전쟁기념관을 드나들며 전투기, 그리고 탱크를 종일 스케치했다. 무시무시한 살상력을 지닌 전투기나 전투함이 안보 산업과 군비 경쟁으로 상징되는 국가 체제를 함의한다면 백병전을 하듯 살고 있는 일상의 ‘武裝家長’은 대량 살상무기보다는 개인화기가 더 잘 어울린다. 그리하여 개인화기에 대한 연구 결과가 그의 드로잉 작업으로 이어진다. 군인들이 사용하는 무기들을 접한 적 없는 작가는 실물 사이즈 프라모델 소총을 조립하며 구조를 연구했고 인터넷에 나오는 무기 사이트와 전문 블로그,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쇼핑 사이트 이미지를 면밀히 연구했다. 심지어는 국방부 홈페이지를 뒤져 민원실로 전화해 무기화사단을 방문해 155밀리미터 백린탄을 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지만 복잡하고 여의치 않은 상황 때문에 실제 방문을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런 여러 학습 과정을 거침으로써 작가는 제원과 더불어 무기의 역사까지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M34 백린탄은 누가 어디서 누구에게 사용하였는지, 어떻게 사용하며 어떻게 구성되는지 드로잉과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만드는 작업을 통해 군대를 경험한 남성들 보다 더 무기와 밀착되는 경험을 거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무기를 체화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사이즈이나 사용할 수 없는 말랑말랑한 무기를 손으로 만드는 작업은 어쩌면 치열한 현실에 대한 무기력을 드러냄과 동시에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폭력적인 체제의 핵심을 거세시킨다. 탱크와 자동소총의 포신과 총구는 힘없이 구부러져 있다. 공격적으로 뻗은 총의 남성적 이미지는 허보리의 다독이는 손길과 여성적 시선 아래 부드러운 곡선과 말랑말랑한 촉감을 얻는다.

넥타이와 양복을 해체하고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바느질을 치열하게 수행한 작업은 남성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을 담는다. 당연하게도 허보리의 이런 작업이 총구 위에서 죽음을 건 경쟁에 내몰린 이들을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이러한 현실을 되돌이켜보는 기회를 만들 뿐만 아니라 나아가 길고 부드러운 포옹처럼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역할을 해낸다. 남성들이 수행하는 전쟁에 쓰이는 무기에 맞서 천과 바느질이라는 재료로 이루어낸 수고로운 노동은 인간이 파멸적 도구만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님을 역설한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무역센터가 무너진 지 14년이 되었다. 이후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2014년 12월 비로소 끝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허보리 작가가 다룬 오리지널 무기들이 살상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양복을 입은 ‘제1의 성’이 전쟁을 만들고 돈을 돌리고 금융을 장악하고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 세계를 명확하고 냉정하게 보아야 함은 당연하다. 허보리의 말랑말랑하지만 정교한 양복 무기들은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애통하고 잔인한 면에 생각을 미치게 만든다. 이 세계는 약육강식과 비정이 판치는 세계이지만 우리는 가냘픈 촛불이 일렁이듯 본능과 파괴에 맞서 평화와 부드러움을 옹호해온 이들을 안다.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면 바로 그 작고 가냘픈 부드러움에 바쳐져야 하는 것 아닐까.

 

2015.9

Armed Breadwinners of Boree Hur

Juno Seo

 

 

The must-wear item for a woman to dress up like a man is a necktie. Wearing a necktie and a nice suit is the icon that symbolizes men, and so many male breadwinners wear a necktie and a suit and off to work they go every morning. Whether it be to men or women, wearing a suit or not wearing a suit, life is like a fierce war to all but the artist attempts at revealing how fierce life is by making weapons out of neckties and suits which are the icons of men.

The concerns over tough and fierce life were displayed in the form of medieval shields and swords made out of no-longer-worn neckties and suits that would probably appear in online role playing games. The lives of the modern people plagued with competition is shown through the use of weapons in medieval fantasies like swords that little boys get interested in (or go crazy over) at a certain period of time. Then on, the artist eliminates the element of fantasy and creates weapons that are used in real wars that take place even today. Delicately made tank reduced to half the real size and real-sized rifles M4 and M2, bullets and cases, various high explosives and grenades using clothes from neckties and suits make just about anyone want to hold them in the hand and act like soldiers.

In fact, the artist has no experience with such weapons. Instead, she frequently went to the War Memorial of Korea and made sketches of fighter jets and tanks all day. If the fighter jets and tanks with fearsome killing power refer to a nation’s system symbolized by competition within the security industry and arms race, then rather than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ivate weapons are more suitable for ‘Armed Breadwinners’ who live every day of their life as if engaged in a hand-to-hand combat. And therefore, the results of researches on private weapons are translated to her drawings. Since the artist has never experienced weapons soldiers use, she studied the structure by assembling a real-size plastic model gun, and thoroughly studied online websites and blogs related to weapons as well as online shopping malls of military maniacs. The artist even rummaged through the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online, called the Office of Civil Service to express that she wanted to visit the arsenal to take a look at the 155 mm White Phosphorous, but unfortunately she could not pay visit because the army base was in Gangwon-do and of some complicated process. Repeating the course of research over and over again, the artist learnt of the history of weapons in addition to the components of the weapons such as who and where and to whom M34 Wite Phosphorous was used, how you use it and what it is composed of. Through the extensive work of drawing and completing the work stitch by stitch, she goes through the process of growing closer to the weapons than men who have experience with the military. In other words, she gets to 'embody' the weapons. Perhaps the work of creating actual-size weapons that are way too soft to do any harm exhibit helplessness against reality as well as castrate the core of the violent system created by men. The cannon and the gunpoint of the tanks and rifles are bent helplessly. The masculine image of the gun pointing outward aggressively obtains soft lines and textures under the tender feminie fingers and eyes of Boree Hur.

The artist’s work of dismantling neckties and suits, reassembling them with delicate stitches, which are considered to be women’s work, contains the feeling of ambivalence, of living together with men. Of course, such work of Boree Hur cannot save the people who are driven out to life-staking competitions at gunpoint. However, her work provides us with the opportunity to reflect on the reality we are in, and furthermore, consoles exhausted souls like a long-lasting and soft embrace. Against the weapons men use in war, the painstaking labour performed with clothes and needles strongly argues that humans can make something other than destructive tools as well.

It has been 14 years since the collapse of the World Trade Center of New York in Sept. 11, 2001. The war in Afghanistan that followed swiftly was finally brought to an end in December 2014. Still, war is raging in countries such as Israel, Palestine and Syria, and the original weapons artist Boree Hur used in her works are being used to kill lives. ‘The first sex’ creates war, circulates money, dominates finance, and is controlling the world. Maybe it is only natural to view the world with objective and cold eyes. The soft but delicate suit weapons makes us realize the brutal and deplorable side of the world men has made. Despite the fact that we are living in a world dominated by the brutality and the survival of the fittest, we know of people who went against their nature and destruction as if the shaking flame of faint candlelight, and protected peace and tenderness. If there is greatness to humans, wouldn't it be that very small and faint tenderness?

2014.12

허보리의 마음의 풍경 :

과열된 ‘광장 휴머니즘’을 식히는 미적 기제

 

 

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동덕여자대학교)

 

 

“진실하면 나는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더욱이 개인적이고 살아있는 것이면 나는 더 힘찬 박수를 보낸다.”

-에밀 졸라(Émile Zola)

 

 

1.

 

허보리는 더 이상 광장으로 가지 않는다. 그의 회화는 광장으로 향하는 걸음을 멈춘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마음의 방’으로의 방향선회가 있은 후부터, 선동이나 소란스러운 웅변의 범주 밖으로 벗어난 때부터, 그의 붓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세계에 등장하는 것들은 그래서 광장의 부산물이거나 교차로에서 가져온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마음을 구성하는 것들이다. 시선의 뒤 안으로의 물러섬과 더 가깝게 결부된 것들이고, 살아있음의 흐름이 더 잘 감지되는 것들이다.

 

마음의 방은 어떤 곳인가? 작가는 말한다. “어둠 속의 백열등 빛”이나 “물에 번지는 잉크”처럼 점진적이며 은은하게 흐르는 흐름이 있는 곳이라고, “연기나 향기” 알갱이들처럼 대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존재의 기운들과 대면하는 곳이기도 하다고! 그곳에서 작가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풍경을, 잉크처럼 번지는 흐름과 실존입자들의 부유를 그리고 또 그린다. 작가는 처음부터 이 보이지 않는 풍경만을 취급해 왔다. 그에게 마음에 의해 그려진 것이 아니며, 따라서 마음을 담겨있지 않은 풍경은 신앙심이 결여된 종교 회화, 충성심이 결여된 군주의 초상화와 같은 것이다. 코로[(J.-B. Camille Corot)의 회화에 대한 테오필 토레(Theophile Thore)의 비평이 떠오르는 게 결코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 “코로는 언제나 단 하나의 똑같은 풍경밖에 그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화가다.󰡓 허보리의 세계에서는 마음을 다룰 때에만 진정한 풍경화가 된다. 마음이 배제된 풍경, 그 안으로 몸을 숨기고 싶은 마음의 방이 부재하는 풍경은 더 이상 풍경이 아니다. 멋진 가로수 길과 황혼의 강렬한 색조만을 앞세우는 풍경화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작가가 자신이 그리는 풍경의 밖에 위치해 있는 풍경은 감상용 눈요깃거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진정한 풍경으로 나아갈 수 없다.

 

허보리의 마음의 풍경은 “한 개인의 침범당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새삼 부각시킨다. 마음이 침범당해 타인들과의 간격과 거리가 허용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스위스의 데이비드 시그너(David Signer)가 “열대성 휴머니즘”으로 명명한 덫, 보드리야르가 ‘소통의 황홀경’으로 짚은 상황, 곧 사람들의 관계가 지나치게 뜨거워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들 사이의 적절한 거리가 확보되지 못해 구성원들이 모방욕망, 경쟁, 열정, 질투심, 원망 등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전체성과 폭력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거리의 폐지와 그로 인한 과열된 관계와 과잉 소통이야말로 포스트모던적 자아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그런 자의식은 피로감의 엔트로피와 폭력성의 증폭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허보리가 부단히 탈주를 기획하지 않을 수 없는 ‘과열된 휴머니즘’이요 ‘광장의 선동’인 것이다. 작가는 숨고, 도망치고, 달아난다. 작은 나무인형에 문을 달고, 그 안으로 들어가 한 동안 틀어박혀 있는 것을 꿈꾼다. 사람들의 시선이 가지 않는 대수롭지 않은 나무 숲으로 숨어버릴까 궁리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스마트폰을 버리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리라고 다짐한다. 작가는 이렇듯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있는 곳들을 그려왔다. 때로 그것은 버려진 종이박스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에게 회화는 단지 숨을 곳을 그려넣는 공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회화 자체가 숨는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마음의 풍경은, 그리고 회화는 과열된 휴머니즘을 냉각해 그 체제의 전복을 꾀하는 미학적 기제인 것이다.

 

마음은 비록 연약하고 상처받기 쉽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전체성의 체계에 공포를 야기시킨다. 미메시스적 욕망을 넘어 진정한 ‘한 사람 성(性)’, 깊이 있는 개인성을 담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혁명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마음의 풍경을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키고 자신을 유배지화 하는, 베이컨적 의미의 동굴의 우상에 매몰되는 것과 혼돈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광장의 우상, 모방욕망과 질투심으로 뜨거워진 포스트모던적 파토스의 위험을 인식하고, 그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필연적인 시도다.

화가가 도시의 군주나 수행원이 아니라 “마음의 포수(捕手)”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화는 도시를 우회하고 광장을 가로질러 마음으로 가는 미적 여정이어야 한다. 도시를 건설하고 광장을 정복하는 것은 폭력과 약탈을 동반하며, 따라서 군주나 정치가의 관심사일 순 있어도 예술가의 길일 수는 없다. ‘마음으로 난 길’이 예술가가 걸어야 할 길인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허보리의 회화론은 “타자와의 폭력적인 근접성과 무차별화”에 매몰되는 이 시대의 위험을 우회적으로 폭로하고 전복시킨다. 지체없이 마음을 향해 선회함으로써, 과열된 ‘광장 휴머니즘’과 ‘도시의 전체성(Totality of the city)’에 대한 안티테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2.

 

테크닉의 면에서 보자면 20세기 미술은 거칠고 동물적인 미술이다. 묘사와 해석이 아니라, 곧바로 행동으로 돌입한다. 화가들은 묘사되는 대상을 배제하는 유행에 대거 가담했다. 마네는 재료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회화’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앙드레 말로도 모델이 아니라 재료에 몰입하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허보리는 그 데카당한 충고를 더 이상 따르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에게 매체로서 회화, 재료로서 안료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대상이나 모델, 내용을 희생양으로 내몰 필요는 없었다. 회화든 재료든 기법이든, 마음의 방을 담는 그릇이거나 그 자체가 될 때에만 의미를 지닐 뿐, 그 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허보리에게 대상이나 모델은 그 자체로서 중요하다. 사물의 외적 특성을 파악하고 재현하는 것이 최우선하는 고려사항은 아니더라도, 사물들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그것들은 ‘대상으로부터 충분히 독립적인 회화’를 입증하는데 목적이 있는 모더니즘 미학으로 포괄될 수 없다. 작가는 오히려 사물에 심리극적인 역할을 부여해 의인화한다. 그의 회화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일종의 배우(俳優)로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매개체다. 그에게 사물들은 세잔느적 의미의 정물(靜物)이나 뒤샹적 의미의 개념-오브제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들은 연출자가 할당한 배역을 연기해야 한다. 그 역할이 활성화되는 동안 사물들은 사물 자체이기를 중단한다. 바닥에 어질러진 약병은 쇠약해진 심신을 의미한다.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스마트폰은 과도한 소통으로부터의 탈주라는 의미를 지속적으로 생성해낸다. 닫힌 문이 달린 상자, 사다리 없는 높은 집, 집무성한 수풀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싶은 지친 영혼을 비유해낸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우거진 숲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길 잃은 막막한 마음”을 소개한다. 한 때 그렸던 소시지 더미는 존재를 탈진시키는 폭력적이고 부담스러운 일과를 의미했었다.

 

최근작들에선 “두툼하고 볼륨있는 수채 붓”이 등장하고, 상황들은 자주 “닫혀있는 방”이나 “앞이 보이지 않는 우거진 숲”에서 전개된다. 그것들은 여전히 의인화된 작가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마음의 풍경이다. “탐스러운 머리칼과 든든한 몸통, 쭉 뻗은 다리”를 지닌 수채 붓은 작가의 욕망과 꿈과 고통을 대변한다. 그의 분신인 붓은 분홍빛 연기를 내뿜으며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든다. 그렇듯 마음은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도피된 일상, 실존과 상상된 탈실존의 경계를 분주히 넘나든다. 그 각각의 경험은 그것을 통해 획득된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매개한다. 사방이 밀폐된 하얀 방도 두툼하고 볼륨있는 수채 붓과 같이 의인화된 공간이다. 흰색은 때 묻기 쉬운 색이요, 흰 방은 “침범당하기 쉬운” 장소다. 그림들은 각각의 창백한 불안을 품은 채 아직 그려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정작 바닥의 흰 카펫에는 큰 얼룩이 번져나가고 있다. 《마음의 점》은 회화라는 고통스러운 침묵에 대한 도상학적 해석을 내포한다. 회화는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 질문을 더 극단으로 몰아갈 뿐이다. 그 통증에 의해 마음은 쉽게 얼룩진다. 그리고 화가는 그렇게 생긴 얼룩들에 의해서만 마음의 풍경을 그릴 준비를 마칠 수 있다.

 

마음의 포수는 마음이 거하는 곳, 인간이 피어나고 시드는 존재성의 내밀한 산실(産室)을 향해 매순간 방향을 선회한다. 허보리의 마음의 풍경은 충분히 초현실적이지만 위협적일만큼 낯설지는 않다. 데자 뷔(déjà vu), 또는 언젠가 적어도 한번은 그곳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곳의 어떤 특성이 우리 모두의 보편적 욕망과 더 보편적인 불안, 그리고 모호한 희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허보리가 그의 마음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틀림없이 더욱 낯설어 보일 그곳을 스케치해내는 만큼,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013.7

허보리

철학하는 그림, 사물과 유희(遊戱)의 스토리텔링

 안현정

“인간의 모든 상태 가운데 오직 유희만이 인간을 완전하게 하고 천성(天性)을 발전시킨다.

그리고 그것의 본질은 자유에 있다.” - 쉴러의 ‘유희충동(遊戱衝動)’

허보리는 감수성이 남다른 작가다. 그는 눈에 띈 사물을 그대로 지나치는 법이 없다. ‘마치 ~와 같다’는 비유적 표현이 작품의 뿌리를 이루고, 그가 처한 상황과 감정이 줄기가 되어 스토리를 만든다. 어린 시절 넋을 놓고 바라보던 동화 속 이야기처럼, 그의 비유는 놀랍도록 해맑고 유쾌하다. 주전자의 밑바닥을 닳고 닳도록 닦아냈다던 작가의 어머니는 허보리가 사물을 의인화하는 첫 번째 모티브를 제공해 주었다. 주전자는 작품으로 환원되면서 뜨겁게 달아오른 불 위에서 시뻘겋게 달궈진 엉덩이를 갖게 된다. 조금이라도 뜨거워질라치면 크게 소리를 내어 지를 것 같은 수다스러움까지 느껴진다. 작가는 명랑한 웃음을 자아내는 ‘유희’라는 도구를 통해 나약한 인간존재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에 도전장을 던진다. 유희에는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신뢰가 깔려있음을 인지한 까닭이다.

사물과 유희의 스토리텔링은 계속 이어진다. 책상 위에 쌓여가는 소시지, 식탁을 화분삼아 끊임없이 자라는 채소들,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 말미잘 형상의 개체들과 의자 사이로 솟아나는 꽃이 핀 나뭇가지, 남과 여로 분장한 케첩과 마요네즈 등. 변형되고 쌓여가는 형태들은 인간에 의해 거세당한 사물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불완전한 사고의 군집을 대변한다. 이러한 작가의 사유과정은 사물을 관찰하는 단계(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작품에 감정을 이입하는 단계(새로운 생명체의 창조)로까지 이어진다. 현실상황 속에서 확장된 비현실의 모티브들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꽉 닫혀 있던 우리의 머리를 자유롭게 해방시킨다.

작가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공간사이의 긴장관계로까지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르네 마크리트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즉흥적 기법(Depaysement:어떤 대상을 일시적인 환경에서 떼어내 이질적인 환경에 놓음)을 통해 기이하고 낯선 상황을 연출했듯이, 작가는 도시공간․자신의 방․작업실․산과 바다 등에 자신의 감정이 비유된 사물(연필․캔버스 등의 화구, 휴대폰, 주변에 산재한 각종 음식물 등)을 위치시킴으로써 유희의 효용에 사유의 자유로움을 더하고 있다. 방안에 꽉 차버린 산, 버려진 휴대폰, 알에서 태어나 힘겹게 등산하는 캔버스, 침대와 소파 위에 널부러진 음식 등. 이 모든 것은 창작의 메마름을 호소하는 작가 자신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작가는 오늘도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물에 생명이 있음을 인지한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사물의 편’에 서서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