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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가장

2015.9

@세움아트스페이스

 

무장가장 武裝家長

던적스러운 삶 가운데서

 

허보리

   이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정이 굴러가기 위해 부지런히 돈을 버는 가장 家長들이 있다. 그것이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그들은 이 사회와 문화가 그들에게 떠맡긴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기계적인 출근을 하고 그 안에서 상대방을 밟고 올라가야만 살아남는 잔인한 구조에 떨어지게 된다. 그것이 정말 내가 원했던, 혹은 나를 위한 싸움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 너덜너덜 투쟁을 하고 지친 몸을 끌고 돌아온다. 집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먹는 입' 食口들이 노동의 대가인 돈으로 음식을 먹고 배불러 지지배배 댈 때 비로소 야릇한 성취감과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가장 家長은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겠지만 남성의 양복은 여성의 정장보다 매우 보수적인 형식과 색상 안에서 디자인되며 계절을 느낄 수 없고, 특히 목에 매는 넥타이를 꼭 해야만 선물포장의 리본처럼 비로소 정숙함이 완성 된다는 점에서 더욱 상징성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토록 정숙한 의상을 입고 우리는 죽지 않고 이 생을 이어나가기 위해 얼마나 던적스러운가. 그렇다고 어디로 도망 나갈 방도도 없는 채 그 '죽여야 사는 구조'에 우리가 갇혀 있다.

 

 

   여기 몇 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벗어나길 원하나 벗어나지 못함

정숙한 모습이나 정숙하지 못함

죽이고 싶지 않은데 죽여야 함

죽이고 있지만 물리적인 살인이 아님

내가 일하지만 일을 해야 하는 필연성을 강요당하고 있음

내가 일하지만 자아가 없음

 

   과 같은 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살상을 하는 무기의 모양으로 돈을 벌기위해 필요한 전투정신을 말하되. 어떠한 상처도 줄 수 없는 무기력한 무기들의 질감으로 그 아이러니함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연민하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혹은 '우리 이제는 좀 다를 수 없을까' 라는 애통한 마음을 섞어서 많이 부드럽고 폭신하고 뚱뚱하게 만든다. 바지의 칼주름은 곡선을 그리며 늘어진 대포로, 정갈한 실크넥타이는 껴안기 좋은 크기의 보드라운 권총으로. 칼은 완전히 방전되어 축 쳐진 퇴근길의 직장인처럼 온전히 서있지도 못하게 그렇게. 더 격렬하게 쓸모가 없는 무기들이다.

In our despicable lives

 

Hur Boree

There are breadwinners who work hard and diligently to sustain their family, which is the smallest unit of society. Whether the breadwinner be a man or a woman, they go to and from work mechanically andsolely with the responsibility and obligations imposed upon them for unknown reasons, and fall into an atrocious structure in which they must trample othersin order to survive. They come back home with distressed bodies totally worn out from a battle without knowing if they engaged in it because they really wanted to, or if it was theirs to fight in the first place.However, a strange feeling of achievement and relief fill them when they see the ‘hungry mouths’ waiting at home are finally stuffed with food and starts chirpingwith satisfaction with the reward money earned from hard work.

 

The breadwinners can be a man or a woman, but if you look at the suits for men, they are designed in a very conservative manner and color when compared to those for women. In addition, one can’t find any trace of seasonal changes in them. The very fact that a necktie must be worn in order to finish the virtuous looks of a suit as if a ribbon on a nicely packaged gift, had a strong symbolic meaning to me. How rigid and doggedare we to wear such a serene attire and continuestruggle through the harsh everyday lives in order to resist death? We are trapped in a ‘structure where you kill to survive’ with no possible way out.

Here are a few ironies that came to my mind:

 

Wanting to escape but can’t;

Seemingly virtuous but isn’t;

Not wanting to kill but have to;

Is killing but isn’t a physical murder;

Am working but is actually being forced to do so by its inevitability;

Am working but is actually unconscious of ‘self’; and so on.

 

In order to express the ironies that came to my mind and the combative mindset needed to earn money inthe form of weapons that actually kill people, I tried tomake use of the element of texture of helpless weapons. Perhaps I was deeply distressed and upset, wondering why we can’t ever break away and change the situation we are in. I tried as much as possible to make them soft and fatty, expressing the knife pleats of the trousers in the form of a cannon stretched out in a curved line and the fine silk necktie in the form of a soft rifle small enough to hold in the arms. The sword canbarely stand on itself, just like the exhausted employeesgoing back home from work, totally useless and helpless.

 

 

마음의 포수捕手

2014.12.18-12.31

@pialux

 

 

마음의 포수 捕手

​허보리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 왔다.

이것은 연극 같은 것인데 나는 마음의 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가시(可視)적인 사물을 주물럭거려 최대한 비유적으로 그것에 가까워지도록 연기하도록 도와주는 연출자이다.

그러니까 나의 배우들은 주변의 사물들이고 내가 그리는 배경이나 소품들은 연극의 무대가 된다. 나는 이런 떠다니는 공허한 이미지를 잡아내는 포수(捕手) 이다.

 

내 주변의 사물들 중에서 어떤 용도나 모양에 있어서 가장 인간다운 주체에 대해 고민해 봤다. 그것은 정말 너무나 가까이 있는 붓이었는데(사실 모든 사물이 인간에 비유될 수 있다. 또 모든 사물로 인간의 인생을 사유할 수 있는 것 같다) 두툼하고 볼륨 있는 수채 붓은 탐스러운 머리칼, 든든한 몸통, 쭉 뻗은 다리 등으로 비유될 수 있는 신체를 갖고 있는 듯 보였다.

 

또한 붓은 일꾼이고 노동자이다. 그리고 그림을 만드는 도구로서 창조, 생산의 임무를 하고 있다. 나는 이 붓에 내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듯하다. 이 붓은 자아를 상징하고

고난 중의 꿈을 꾼다. 그래서 그(그녀)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른 무대에 서게 되는데 각각의 곳에서 그 공간이 가지는 각각의 감정에 충실한 채 존재한다. 이 주체는 감정의 주인이 되어 공간을 소유한다.

 

마음을 만질 수 있다면 그 질감은 어떤 것일까. 어둠 속에 연약하게 일렁이는 빛이나 향기를 가진 연기, 혹은 부드럽게 바람에 흔들리는 길고 가는 털, 바닥부터 조용히 천천히 차오르는 물, 미끌거리고 질척이는 액체는 아닐까. 그것은 공간 안에 당당히 존재하는 무겁고 딱딱한 육면체의 대리석이 아니고, 그 반대의 어떤 것이며 존재하다가도 쉬이 사라질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을 표현했지만 내 그림 속에 마음은 없다. 그냥 상황, 설정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마음의 안이라서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또 내가 고정시킨 상황이지만 그것은 1대1로 대상과 일치할 수 없다. 그 감정을 어찌 말로, 글로, 이미지로, 음악으로 춤으로 100% 재현할 수 있을까. 단지 가까이 가서 다시 느끼고 영원히 기록하고 싶은 소망이 있을 뿐이다.